아파트 베란다 구석, 주택의 처마 밑, 심지어는 에어컨 실외기 뒤편까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벌집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경험, 최근 들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 범인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이 바로 생태계 교란종인 '등검은말벌'입니다. 그런데 왜 이 무서운 말벌들은 깊은 산속이 아닌, 하필 우리 생활 공간 바로 옆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는 걸까요?
많은 분들이 말벌이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가까이 온다고 오해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놓은 환경이 그들에게 최고의 '5성급 호텔'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바로 우리가 제공하는 완벽한 '건축 조건'과 넘쳐나는 '먹이'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는 3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비바람 막아주는 완벽한 건축물
깊은 숲속에서 말벌이 집을 지을 만한 곳은 생각보다 제한적입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튼튼한 나뭇가지나 바위틈은 항상 외부 위협에 노출되어 있죠. 하지만 인간이 만든 건물은 이들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펜트하우스'를 제공합니다. 아파트의 발코니, 주택의 처마 밑, 건물의 외벽 틈새 등은 비와 강풍을 완벽하게 막아주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특히 이런 인공 구조물은 자연물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견고하여, 수천 마리의 대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거대한 벌집을 안전하게 지탱해 줍니다. 즉, 이 영리한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집과 애벌레들을 가장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우리의 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생존 본능에 따른 가장 합리적인 판단인 셈입니다.
먹이가 넘쳐나는 뷔페식당
말벌은 무엇을 먹고 살까요? 이들은 애벌레를 키우기 위해 꿀벌, 파리, 나비 등 다른 곤충을 사냥하는 육식성 포식자이자, 동시에 자신들의 에너지원으로는 달콤한 수액이나 과즙을 즐기는 잡식성 곤충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먹이 조건이 가장 완벽하게 충족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와 농촌입니다.
우리가 가꾼 화단과 공원에는 꿀벌이 많고, 쓰레기통 주변에는 파리가 들끓습니다. 과수원이나 주택 정원의 과일나무는 이들에게 달콤한 주스를 무한정 제공하는 레스토랑이죠. 즉, 사람 사는 곳 근처는 이들에게 365일 내내 산해진미가 차려진 거대한 '뷔페'나 다름없습니다. 굳이 힘들여 멀리까지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집 바로 앞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서식지가 없는 것입니다.
천적이 없는 안전한 피난처
원래 등검은말벌이 살던 깊은 자연 속에는 곰이나 오소리, 담비처럼 벌집을 공격해 애벌레를 먹는 천적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천적들은 사람이 사는 도시나 마을까지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습니다. 결국 도심은 이들에게 천적이 없는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또한, 계속되는 개발로 인해 숲이 파괴되면서 원래 살던 서식지를 잃어버린 말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도심으로 밀려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안전하고 먹이도 풍부하며, 자신들을 위협할 천적마저 없는 도시 환경은 이들에게 생존과 번성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이자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만약 벌집을 발견했다면?
그렇다면 우리 집 근처에서 이 위험한 세입자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로 직접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섣불리 막대기로 건드리거나 살충제를 뿌리는 행동은 말벌들을 극도로 자극하여 집단 공격을 유발하는 가장 위험한 행동입니다.
가장 현명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한 뒤, 즉시 119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소방대원들은 말벌집 제거를 위한 전문 장비와 보호복을 갖추고 있으며,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신속하게 처리해 줍니다. 말벌집 제거는 '생활 안전 구조' 활동에 포함되므로, 비용 걱정 없이 안심하고 도움을 요청하시면 됩니다.
우리 집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려면
애초에 말벌이 우리 집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여왕벌이 홀로 집을 짓기 시작하는 이른 봄철(4~5월)에 집 주변을 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는 주먹만 한 크기의 초기 벌집을 짓는데, 이 단계에서 발견하면 훨씬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택 외벽의 틈새나 사용하지 않는 환풍구 등 벌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미리 막아두는 것도 좋은 예방법입니다. 말벌이 집을 지을 만한 잠재적인 공간을 원천 차단하여, 이들이 우리 집을 매력적인 장소로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작은 노력이 큰 위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등검은말벌은 일반 말벌보다 더 위험한가요?
A. 네, 그렇습니다. 등검은말벌은 다른 말벌에 비해 훨씬 공격성이 강하고, 한번 침에 쏘였을 때 주입되는 독의 양도 많아 더 위험합니다. 특히 벌집 근처에서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므로 절대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합니다.
Q. 주먹만 한 작은 벌집은 제가 직접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A. 아니요, 절대로 안 됩니다. 작은 벌집이라도 그 안에는 여왕벌이 있으며, 작은 위협에도 즉각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크기에 상관없이 벌집을 발견하면 무조건 119에 신고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Q. 말벌은 언제 가장 활동이 왕성한가요?
A. 늦여름에서 초가을(8월~10월) 사이가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이때 벌집의 규모가 최대로 커지고 개체 수가 가장 많아지며, 애벌레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극에 달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등검은말벌 (r152 판) - 나무위키
도시 환경에 뛰어난 적응력, 큰 군집 형성, 그리고 천적이 적은 안전한 환경을 찾아 사람 주변에 집을 짓습니다. - 등검은말벌 - 국립생태원 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
등검은말벌은 온도 조절과 기후 변화에 잘 대응하는 특성을 갖추어 사람 거주지 근처에서 서식하기 쉽습니다. - 도심 습격한 '등검은말벌'…막을 대책은? - YTN 사이언스
온난화로 생존 환경이 개선되고, 숲보다 천적이 적으며, 안전한 구조물을 이용해 집을 짓기 때문에 사람 근처에 둥지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