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을 거닐다 보면, 발밑에서 "타타타탁" 하고 튀어 오르는 메뚜기와 함께 "치르르르-" 하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는 이 소리를 당연하게 '메뚜기 우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메뚜기는 과연 입으로 우는 걸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오늘 자연의 아주 흥미로운 비밀 하나를 알아가시게 될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메뚜기는 목소리가 아닌 온몸을 '악기'처럼 사용하여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의 비밀은 바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메뚜기의 뒷다리와 날개에 숨겨져 있습니다.
목소리가 아닌, 몸으로 연주하는 악기
우리가 듣는 메뚜기의 소리는 성대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 대신, 수컷 메뚜기는 자신의 몸을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악기로 변신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비밀의 핵심은 바로 튼튼한 뒷다리의 허벅지 안쪽과 딱딱한 앞날개에 있습니다.
수컷의 뒷다리 허벅지 안쪽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빨래판처럼 아주 작은 돌기들이 촘촘하게 줄지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앞날개의 특정 부분에는 이 돌기들을 긁을 수 있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부분이 있죠. 메뚜기는 이 두 부분을 서로 빠르게 비벼 마찰시켜 "치르르르"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바이올린의 활로 현을 켜서 소리를 내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세레나데
그렇다면 수컷 메뚜기는 왜 이토록 열심히 자신의 몸을 연주하는 걸까요?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짝을 찾기 위함입니다. 풀숲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는 암컷에게 보내는 애절한 '사랑의 노래', 즉 세레나데입니다. "내가 여기 있어요! 내가 이 구역에서 가장 건강하고 힘센 신랑감이랍니다!"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죠.
암컷 메뚜기는 이 소리를 듣고 가장 크고 우렁찬 소리를 내는 수컷을 찾아갑니다. 크고 규칙적인 소리는 그만큼 수컷이 건강하고 생존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멋진 연주는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수컷의 가장 중요한 구애 활동이며, 암컷에게는 최고의 짝을 고르기 위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해결책입니다.
라이벌을 향한 강력한 경고
수컷의 연주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수컷들을 향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여기는 내가 차지한 좋은 풀밭이니, 다른 녀석들은 함부로 들어오지 마!" 라고 자신의 영역을 선포하는 것이죠.
만약 자신의 영역 근처에서 다른 수컷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메뚜기는 더욱 크고 빠르게 다리를 비벼 상대의 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때로는 소리 경쟁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나 서로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풀밭이 유독 시끄럽게 느껴지는 날은, 바로 이 작은 연주가들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역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리를 내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듣는 모든 메뚜기 소리는 전부 '수컷'이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앞서 설명한 소리를 내는 특별한 '악기' 구조는 대부분의 경우 수컷에게만 발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암컷은 이 소리를 내는 능력이 없어 조용히 수컷의 연주를 듣고 평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풀밭에서 들려오는 모든 "치르르르" 소리는,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컷들의 열정적인 공연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그저 시끄러운 벌레 소리로만 들렸던 소음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치열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일부로 새롭게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곤충마다 다른 연주 스타일
메뚜기와 비슷한 곤충인 '여치'나 '귀뚜라미'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이들은 메뚜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연주합니다. 메뚜기가 '뒷다리와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내는 '현악기 연주자'라면, 여치나 귀뚜라미는 '양쪽 앞날개'를 서로 비벼 소리를 내는 '타악기 연주자'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비슷한 곤충이라도 소리를 내는 원리와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이제부터 풀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치르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 메뚜기가 다리로 연주하고 있구나!' 하고, "찌르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귀뚜라미가 날개로 연주하고 있구나!' 하고 구분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왜 유독 덥고 햇볕이 좋은 날에 메뚜기가 더 시끄럽게 우나요?
A. 메뚜기는 변온동물이라 주변 온도가 높을수록 몸의 움직임이 활발해집니다. 즉, 따뜻한 날씨에 근육이 더 빠르고 힘차게 움직일 수 있어, 더 크고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Q. 암컷은 귀가 있나요? 어디로 소리를 듣나요?
A. 네, 있습니다. 놀랍게도 메뚜기의 귀는 머리가 아닌, 배의 첫 번째 마디 양쪽에 있습니다. 얇은 막으로 된 이 고막을 통해 수컷의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Q. 메뚜기는 해로운 곤충인가요?
A. 벼나 농작물을 갉아먹기 때문에 농부의 입장에서는 해충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숲이나 들판의 생태계에서는 새나 다른 동물의 중요한 먹이가 되어주는, 자연의 순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초보 집사 필독! 메뚜기 키우기 A to Z (먹이, 사육통, 관찰일지 완벽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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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풀벌레 메뚜기의 사랑과 전쟁 -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한국생물다양성정보
메뚜기는 뒷다리에 있는 까끌까끌한 돌기를 앞날개에 마찰시켜 짝을 부르는 소리를 냅니다. - [아하! 생태 Ⅱ] 풀벌레 메뚜기의 사랑과 전쟁 - 줌닷컴 뉴스
메뚜기는 뒷다리와 앞날개를 재빠르게 마찰해 다양한 종류의 울음소리를 만듭니다. - 메뚜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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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울음소리는 주로 앞날개와 뒷다리 마찰에 의해 발생하며 짝을 유인하는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