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창문을 열어두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풀숲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이 정겨운 소리는 여름의 상징과도 같죠. 우리는 이 소리의 주인공을 막연히 '여치'나 '베짱이'라고 부르며, 그저 벌레가 우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리는 단순한 울음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악기 연주'이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세레나데'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아름다운 연주회의 주인공은 모두 '수컷'이며, 그들의 소리에는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의 후손을 남기려는 절박한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목소리가 아닌 '악기'로 내는 소리
가장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놀라운 사실은, 여치나 베짱이가 우리처럼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맑고 청아한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걸까요? 그 비밀은 바로 수컷의 '날개'에 숨어있습니다. 수컷의 한쪽 앞날개에는 줄처럼 생긴 돌기(줄)가 있고, 다른 쪽 앞날개에는 이 돌기를 긁을 수 있는 날카로운 부분(긁개)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바이올린의 활과 현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수컷은 두 날개를 빠르게 비벼 이 '줄'과 '긁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즉, 이들의 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악기인 셈이죠. 우리가 듣는 아름다운 여름밤의 교향곡은, 바로 이 작은 연주가들이 자신의 날개라는 악기로 펼치는 열정적인 연주회입니다.
밤의 오케스트라, 수컷들의 세레나데
그렇다면 수컷들은 왜 이토록 밤새도록 지치지도 않고 연주를 하는 걸까요?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이 우렁찬 노랫소리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암컷에게 보내는 애절한 '사랑의 신호'입니다. "내가 여기 있어요!", "내가 이 구역에서 가장 힘세고 건강한 신랑감이랍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죠.
암컷은 이 소리를 듣고 가장 크고, 규칙적이며, 힘찬 소리를 내는 수컷을 찾아갑니다. 좋은 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고 생존력이 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죠. 즉, 수컷에게 이 연주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구애 활동이며, 암컷에게는 최고의 신랑감을 고르기 위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해결책입니다.
"여기는 내 구역이야!"
수컷의 연주에는 사랑 노래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다른 수컷들을 향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여기는 내가 차지한 최고의 명당이니, 다른 녀석들은 얼씬도 하지 마!" 라고 자신의 영역을 선포하는 것이죠.
만약 자신의 구역 근처에서 다른 수컷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이들은 더욱 크고 요란하게 날개를 비벼 상대의 기를 죽이려고 합니다. 때로는 소리 경쟁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나 서로의 더듬이를 물어뜯으며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여름밤의 소리가 유독 시끄럽게 느껴지는 날은, 바로 이 수컷들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귀는 어디에 있을까?
수컷이 날개로 소리를 낸다면, 암컷은 그 소리를 무엇으로 들을까요? 놀랍게도 여치나 베짱이의 귀는 머리가 아닌 '앞다리' 무릎 바로 아랫부분에 있습니다. 마치 작은 고막처럼 생긴 얇은 막이 양쪽 앞다리에 하나씩 달려있죠.
이 특별한 위치 덕분에, 암컷은 풀숲의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수컷의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소리를 내는 방식만큼이나, 소리를 듣는 방식 또한 생존과 번식에 가장 유리하도록 진화한 자연의 신비입니다.
여치와 베짱이, 소리가 달라요
우리는 흔히 이들을 묶어 '여치베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여치'와 '베짱이'는 울음소리와 활동 시간이 조금 다릅니다. 보통 "찌르르르-" 또는 "철 철 철" 하고 길고 규칙적으로 우는 소리의 주인공은 '여치'이며, 주로 밤에 활동합니다.
반면, "때때때때-" 혹은 "쓰익- 잭!" 처럼 조금 더 짧고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은 '베짱이' 종류일 가능성이 높으며, 주로 낮에 활동합니다. 이제부터 소리만 듣고도 오늘 밤의 연주가가 누구인지 구분해 보세요. 여름밤의 소리가 훨씬 더 흥미롭게 들릴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암컷도 소리를 낼 수 있나요?
A. 대부분의 경우 소리를 내는 것은 수컷입니다. 소리를 내는 날개의 '악기' 구조는 주로 수컷에게만 발달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부 종의 암컷은 수컷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아주 작게 "틱"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Q. 왜 유독 덥고 습한 여름밤에 소리가 더 크게 들릴까요?
A. 여치나 베짱이는 변온동물이라 기온이 높을수록 몸의 움직임이 활발해집니다. 즉, 더운 날씨에 근육이 더 빠르고 힘차게 움직여 더 크고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죠.
Q. 우리 동네에 여치베짱이가 많다는 건 좋은 신호인가요?
A. 네, 아주 좋은 신호입니다. 이들은 주변에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풀과 나무가 풍부하고, 먹이가 되는 다른 작은 곤충들이 사는 안정적인 환경에서만 번성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노랫소리는 우리 동네의 생태계가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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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s.sstory.kr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스크랩] 가을 메뚜기 울음소리, 들어보실래요? - 푸른파도 티스토리
여치베짱이 수컷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앞날개를 비벼 다양한 구애음과 경쟁음을 내어 소통합니다. - 여치 - 나무위키
수컷 여치는 구애음과 경쟁음을 내어 암컷을 유인하고 영역을 방어하는 등 복잡한 울음소리 패턴을 가집니다. - [우리땅,우리생물] 꼬마여치베짱이 - 다음 뉴스
여치베짱이 울음소리는 주변 환경과 짝의 존재에 따라 변화하며, 암컷 유인과 수컷 간 경쟁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여치베짱이 - 나무위키
여치베짱이의 울음소리는 밤에 주로 들리며, 암컷을 유인하고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신호입니다. - 베짱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베짱이 울음소리는 베틀 움직이는 소리와 비슷하며,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