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에서만 보던 짚신벌레, 투명한 몸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 작은 생명체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키워볼 수 있다면 얼마나 신기할까요? 고요해 보이는 연못물 한 방울 속에는 사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쉬는 작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비한 세계를 집으로 가져와 관찰하는 것은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의 집 마당이나 근처 논두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른 볏짚’ 한 줌만 있다면 누구든 이 작은 생명체의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복잡한 실험 도구 없이, 우리 주변의 자연을 이용해 살아있는 교과서를 직접 채집하고 번성시키는 모든 과정을 A부터 Z까지,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의 마음으로 친절하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작은 우주를 담아올 최적의 장소
짚신벌레와 같은 원생동물을 만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올바른 ‘서식지’를 찾는 것입니다. 콸콸 흐르는 깨끗한 계곡물보다는, 물의 흐름이 거의 없이 고여있는 얕은 연못이나 웅덩이가 훨씬 좋은 장소입니다. 특히 낙엽이나 수초가 바닥에 쌓여 자연스럽게 썩어가고 있는 곳이라면 성공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곳은 작은 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유기물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채집을 떠날 때는 깨끗한 페트병이나 유리병 하나면 충분합니다. 병에 물만 채워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의 흙과 썩은 나뭇잎, 녹색 물이끼 등을 함께 조금 담아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물을 뜨러 온 것이 아니라, 그곳의 ‘작은 생태계’를 통째로 이사시킨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 작은 생태계 조각 속에 우리가 찾는 주인공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짚신벌레를 위한 특급 레스토랑 만들기
이제 집으로 가져온 작은 생태계를 번성시킬 환경을 만들어 줄 차례입니다. 여기서 바로 마법의 재료, ‘마른 볏짚’이 등장합니다. 짚신벌레는 볏짚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볏짚이 물속에서 썩을 때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박테리아’를 먹고 삽니다. 즉, 우리는 볏짚을 이용해 짚신벌레의 먹이가 되는 박테리아를 먼저 키워주는 것입니다.
우선 볏짚이나 마른 풀을 2~3cm 길이로 잘라 냄비에 넣고 물과 함께 팔팔 끓여줍니다. 이는 볏짚에 붙어있을 수 있는 다른 잡균이나 곰팡이를 소독하는 과정입니다. 끓인 짚물을 완전히 식힌 후, 채집해 온 연못물과 함께 넓은 유리병이나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부어주면 짚신벌레를 위한 완벽한 레스토랑이 완성됩니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기다림의 시간
모든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준비된 배양액을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따뜻한 곳에 놓아두세요. 너무 밝은 곳은 녹조가 과도하게 번식할 수 있고, 너무 추운 곳은 미생물의 활동이 둔해지기 때문입니다. 뚜껑은 완전히 밀폐하지 말고,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거즈나 랩에 구멍을 뚫어 덮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공기가 통해야 미생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처음 2~3일간은 물이 뿌옇게 흐려질 것입니다. 이는 볏짚의 영양분으로 박테리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후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이 박테리아를 먹이 삼아 짚신벌레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물이 다시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바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입니다.
드디어 만나는 살아있는 교과서
이제 현미경을 꺼내 들 시간입니다. 배양액의 표면 근처나 볏짚 주변의 물을 스포이트로 한 방울 떠서 받침유리(슬라이드 글라스) 위에 떨어뜨리고 관찰해 보세요. 처음에는 초점을 맞추기 어렵지만, 이내 짚신 모양의 작은 생명체들이 빠르게 헤엄쳐 다니는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짚신벌레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관찰이 어렵다면,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약국에서 파는 ‘메틸셀룰로스’ 용액을 한 방울 떨어뜨리거나, 솜을 아주 가늘게 찢어 몇 가닥만 물방울 속에 넣어주세요. 끈적한 용액이나 솜 가닥들이 장애물 역할을 하여 짚신벌레의 속도를 늦춰주기 때문에, 몸속의 식포나 수축포까지 훨씬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작은 생태계 건강하게 유지하기
한번 성공적으로 배양된 짚신벌레들은 꾸준한 관리를 통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먹이인 박테리아가 부족해져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때는 ‘먹이’를 조금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우유나 요구르트를 이쑤시개 끝으로 살짝 찍어 한 방울만 넣어주는 것입니다. 우유가 부패하면서 새로운 박테리아를 증식시켜 짚신벌레의 먹이가 되어줍니다.
단, 이때 절대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너무 많은 먹이를 한 번에 넣어주면 물이 급격히 썩어버려 산소가 부족해지고, 결국 모든 생물이 죽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1~2주에 한 번, 아주 소량만 공급해 주는 것이 이 작은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핵심 비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꼭 현미경이 있어야만 볼 수 있나요?
A. 자세한 모습을 보려면 현미경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개체 수가 아주 많아지면, 어두운 배경에 병을 놓고 손전등을 비췄을 때 아주 작은 흰 점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맨눈으로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도시에서는 볏짚을 구하기 어려운데 대체할 만한 것이 있나요?
A. 네, 좋은 질문입니다. 볏짚이 가장 좋지만, 없다면 애완동물 가게에서 파는 토끼나 햄스터용 ‘건초(티모시)’를 사용해도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상추나 양배추의 마른 겉잎을 사용해도 비슷하게 배양이 가능합니다.
Q. 배양액에서 냄새가 나는데 괜찮은가요?
A. 볏짚이나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흙냄새나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은 정상입니다. 하지만 하수구처럼 아주 심한 악취가 난다면, 먹이를 너무 많이 넣어 물이 완전히 썩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는 아쉽지만 새로 배양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과학 탐구 해캄과 짚신벌레에 대하여 알아볼까요? - 쿠키넷
짚신벌레 채집부터 관찰, 실체 현미경 이용법 및 배양 방법까지 초중등 학생용 실험과정 안내입니다. - 생물 실험 연수 교재 - 서울대학교 과학교육연구소 (PDF)
연못물을 이용한 짚신벌레 채집, 배양 및 관찰 요령을 과학적으로 상세히 서술하는 교재 자료입니다. - 짚신벌레 표본 만들기와 관찰법 - 아꿈선 유정쌤 블로그 (PDF)
짚신벌레 움직임 제어 및 표본 제작 방법과 관찰 팁을 초등 과학 수업에 맞게 쉽게 정리했습니다. - 초등 과학 해캄과 짚신벌레 관찰하기 - 티솔루션 유튜브
해캄과 짚신벌레의 생태와 특징, 채집부터 배양, 관찰 방법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설명하는 강의 영상입니다. - 짚신벌레 및 해캄 관찰 실험 Prezi 발표
짚신벌레 채집과 배양, 실험 관찰 과정을 단계별로 시각적 이해를 돕는 프레젠테이션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