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부터 가을까지, 꿀벌들이 가장 바쁘게 꿀을 모으는 계절. 하지만 이 시기 양봉 농가들은 벌통 주변을 맴도는 무시무시한 '공중 약탈자' 때문에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좀말벌'입니다. 일반 말벌보다 조금 작다는 뜻의 '좀'이라는 이름 때문에 얕보기 쉽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작은 사냥꾼은 꿀벌들에게 있어 그 어떤 맹수보다 무섭고 치명적인 존재입니다.
이 글은 이름과는 전혀 다른, 좀말벌의 무서운 사냥 방식과 이들이 왜 양봉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최악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그들의 생태를 통해 쉽고 생생하게 알려드리는 자연 관찰 보고서입니다.
꿀벌 맞춤형 사냥 전문가
좀말벌이 꿀벌에게 유독 치명적인 첫 번째 이유는, 이들의 사냥 방식이 철저하게 '꿀벌 사냥'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덩치가 큰 장수말벌이 벌통 입구를 직접 공격하여 초토화시키는 '전면전'을 펼친다면, 좀말벌은 훨씬 더 교활하고 집요한 '게릴라전'을 구사합니다.
이들은 벌통 입구 주변 공중에 가만히 떠 있는 '정지 비행' 기술을 사용하여, 꿀과 화분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꿀벌들을 공중에서 낚아챕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움직임이 둔해진 꿀벌들은 이 날렵한 공중 사냥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무장한 병사들이 보급품을 운반하는 수송대를 집중 공격하는 것과 같은 아주 효율적인 사냥 전략입니다.
단순한 사냥을 넘어선 '집단 학살'
좀말벌의 진짜 무서움은 단순히 한두 마리의 꿀벌을 사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한번 사냥에 성공하면, 그 꿀벌의 몸에서 나오는 페로몬 냄새를 따라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습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만 맴돌던 것이, 순식간에 수십, 수백 마리의 좀말벌 떼로 불어나 벌통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게 됩니다. 이들은 돌아오는 꿀벌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여, 하루에도 수천 마리의 꿀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는 양봉 농가에게는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 있는, 그야말로 '꿀벌 대학살'과도 같은 끔찍한 재앙입니다.
미래의 희망까지 앗아가는 약탈
좀말벌의 약탈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바로 꿀벌의 '애벌레'와 '번데기'입니다. 꿀벌 사냥을 통해 벌통의 방어력이 약해졌다고 판단되면, 좀말벌들은 무리를 지어 벌통 내부로 침입합니다.
이들은 벌통 안에 저장된 꿀이나 화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일벌들인 애벌레와 번데기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자신의 애벌레에게 먹일 '고단백 영양식'으로 가져갑니다. 이는 단순히 현재의 일벌을 잃는 것을 넘어, 벌통 군집의 미래와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아주 치명적인 피해를 남깁니다.
막을 수 없는 끈질긴 생명력
양봉 농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좀말벌의 끈질긴 생명력과 엄청난 번식력입니다. 좀말벌은 장수말벌과 같은 다른 말벌에 비해 여왕벌의 수가 훨씬 많고, 한 군집의 크기도 매우 큽니다. 벌집 하나를 제거해도, 주변의 다른 벌집에서 금세 새로운 공격 부대가 날아오기 일쑤입니다.
또한, 도시 환경에도 아주 잘 적응하여 처마 밑, 벽 틈, 땅속 등 예측 불가능한 곳에 집을 짓기 때문에 완전한 방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처럼 막강한 적응력과 번식력은, 양봉 농가와 꿀벌들에게 매년 반복되는 악몽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생태계의 교란, 우리에게 주는 경고
좀말벌이 이렇게 기승을 부리게 된 배경에는 '기후 변화'와 '생태계 교란'이라는 더 큰 문제가 숨어있습니다. 아열대성 기후에 잘 적응하는 좀말벌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생존율이 높아지고, 활동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또한, 천적이 줄어들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살아남기에 더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꿀벌의 실종은 단순히 꿀 생산량의 감소를 넘어, 식물의 수분을 돕는 생태계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좀말벌의 습격은 바로 이러한 생태계의 불균형이 우리에게 보내는 심각한 경고 신호인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좀말벌과 장수말벌은 어떻게 다른가요?
A. 가장 큰 차이는 '크기'와 '색깔'입니다. 장수말벌은 몸길이가 4cm에 달할 정도로 아주 크고, 머리 부분이 주황색을 띠는 반면, 좀말벌은 2~3cm 정도로 작고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노란색 무늬가 더 선명합니다. 사냥 방식도 장수말벌은 직접 벌통을 부수고, 좀말벌은 공중에서 꿀벌을 낚아챕니다.
Q. 좀말벌에 쏘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좀말벌의 독은 매우 강하므로 쏘였을 때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쏘인 부위를 즉시 신용카드 등으로 밀어내어 벌침을 제거하고, 흐르는 깨끗한 물과 비누로 씻어낸 뒤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어지럼증이나 호흡곤란 등 전신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이 나타나면 즉시 119에 연락하여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Q. 양봉 농가에서는 어떻게 좀말벌을 퇴치하나요?
A. 벌통 입구에 말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좁은 철망을 설치하거나, 말벌을 유인하여 잡는 '말벌 트랩(포획기)'을 설치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퇴치는 어려워, 매년 반복되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2022년 꿀벌 실종 사건의 전말 - 경향신문
좀말벌 등 말벌류가 꿀벌에 피해를 주어 양봉농가의 집단 폐사 원인이 되었으며, 기후변화와 농약 사용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 사라지는 꿀벌들…이유는? 대책은? - KBS 뉴스
좀말벌은 꿀벌을 먹이로 삼아 양봉업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있으며, 지역 양봉 농가의 60~70%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 꿀벌 월동성공률, 병해충 관리 및 말벌류 피해 해석을 위한 연구 - 한국양봉학회
말벌 침입과 응애 같은 병해충이 꿀벌 월동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양봉농가 피해를 키우고 있습니다. - 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말벌 문제 심각성 - 한겨레
좀말벌은 꿀벌과 꿀 등 먹이가 밀집한 양봉장을 집중 공격하며 양봉산업에 큰 위협으로 작용합니다. - 꿀벌 실종 3대 원인 중 하나 외래 말벌, 대량포획 길 찾았다 - 세계일보
특히 등검은말벌 등 외래 말벌이 꿀벌을 주 먹이로 삼아 개체수 증가와 꿀벌 집단 붕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